8. 푸른 제복에 젖은 이슬



3번의 입대 영장을 끝내 거부하지 못하고 1987년 7월 8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추스르며 훈련소의 문을 들어서야 했다.

광안리 바닷가 모래사장에 미련을 묻어두고, 부산역을 뒤로하는 열차 난간 부여잡고 애달픈 속울음을 흘려야 했다.

 대전에서의 입영전야를 절친한 친구, 효종과 더불어 조용히 보내고 논산으로 향했다. 다가 올 순간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사랑하는 동생 현정이의 얼굴, Jin Harmony에 대한 애수(哀愁) 등이 뒤범벅이 되어 훈련소 수용연대에서의 첫날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군 생활은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신조로 무념무상으로 흘러갔다.


88년 1월이 되고 어떻게 하더라도 6회 연주회에 맞추어 휴가를 나가려고 서슬이 퍼런 고참들 눈치를 보아가며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끝끝내 선배의 애타는 마음을 외면하는 후배들의 연락을 기다리다 못해서, 예전 연주회 날짜를 미루어 2월초에 연주회를 하리라 예상하고 1월 마지막 주에 휴가를 가기로 했다. 벌써 휴가 갈 생각이나 한다면서 쫄따구가 빠졌다고 괴롭히는 고참들의 눈치가 보였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휴가를 나가 보니 자금사정으로 연주회는 귀대해야 하는 날짜 3일 이후로 밀려나 있었다.

연습하는 것만 보다가 그냥 귀대할 수밖에 또 어쩌랴!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참으로 답답한 지경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귀대는 했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앞 뒤 가리지 않고 연주회 때 어떻게 하던지 다시 나가 보려고 면담도 하고 사정도 해 보았지만 군대는 역시 군대일 수밖에 없었다.

연주회가 열리던 날 - 하루를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연주회가 시작되는 시간인 오후 7시에 맞추어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보지 못하고 도와주지 못하는 못난 선배의 응어리진 ‘한(恨)’ 이었다. 그 편지지에 얼룩졌던 선배의 육수를 당시의 후배들은 느꼈는지 모르겠다.


뒤에 자세히 얘기되겠지만 상병시절의 어느 날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되고 틈나는 대로 Jin Harmony를 설계하는 시간들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인데 8회 연주회를 기점으로 한 미래의 단면도를 이 때 갖추게 되었다.


전령이라는 직책을 맡은 나는 당시 인기 있는 MBC-TV의 교양프로인 「인간시대」에 출연을 교섭하기 위해 정리된 자료를 보내기도 했고 미온적인 그들의 태도에 화가 나서 군복 입은 채로 여의도의 방송국으로 찾아가 담당 PD와 담판을 짓기도 했는데 결과는 ‘사회성 결여’ 라는 이유로 ‘거절’ 이었다.

결과는 안 좋게 됐지만 그 용기는 무모할 정도로 과감했던 것 같다. 누구 말처럼 군인정신은 제 정신이 아닌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서야 몇 번 시도해 본 ‘가족음악회’ 를 비롯하여 여러 가지 계획의 초고를 잡았다. 그 계획을 듣고 본 후배들의 냉소도 있었지만 내가 군생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점이 있다면, 그 시기를 통해 나름의 Jin Harmony 상(像)을 정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줄 잘못 선 육군 사병은 땅과 친할 수밖에 없었고 군인 본연의 임무는 어디에서나 나를 옭아매었다.

가장 힘들었던 88년이 또 그렇게 세월에 묻혀 흘렀다.

낙엽이 쌓여 가고 겨울이 살포시 내려앉았다.


제7회 정기연주회 - 이번에는 연락이 제때에 이루어져 날짜에 맞추어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나름대로는 군복무하고 있는 Jin Harmonian들에게 공문을 작성하여 발송했다. (이런 작업 역시 군에서 맡은 직책 중에서 행정을 처리하는 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군바리들 모여서 중창 한 번 해보자고! 헤어져 살아온 날, 옛날이 그립지 않느냐고!

89년 1월 28일, 제7회 정기연주회가 시작되었다.

5기 주영이의 지휘로 순서가 하나 하나 끝나가고 이제는 마지막 Final Stage, 황송하게도 군복을 입은 채로 - 당시 집이 부산에서 대구로 이사를 했기에 휴가 나온 나는 연주회 때문에 집에도 들리지 못하고 바로 부산으로 직행했기 때문에 군복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 지휘를 했다.

2년만에 다시 서 보는 무대였다.


8년을 지켜 온 그 노래들을 지휘라고 하기보다는 같이 따라 불렀다.

앵콜송으로 ‘아침이슬’을 불렀다. 관중들도 따라서 불러 주었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 손을 흔드노라니 주책없이 눈가에는 또 촉촉한 액체가 고여 있었다.

푸르른 제복은 또 그렇게 시간을 뛰어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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