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새로운 방황
10회 연주회가 끝나고 92년의 2월이 마감되기 직전에 대학은 나를 보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하산(下山)하라 했다.
정신없이 지나가 버린 시간들은 더한 공허함을 안겨주었다.
무엇을 하였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무기력한 시간이 지나갔다.
어디 아무 곳이나 취직해서 남들처럼 살아가기에는 도저히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조그만 일이라도 시작해 보려니 현실이 따라 주지 않았다. 답답한 생각이었지만 취직해서 월급이라는 돈맛을 알면 거기서 헤어나 후에 꿈을 향해 다시 간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고 믿었기에 차라리 굶주림을 택했다.
예술이라기에는 지금이 너무 초라하고 포기하기에는 그 동안 그렇게 힘들게 가꿔왔고 꿈에도 떠오르는 미래가 현실처럼 생생했다.
큰 자금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물색하다가 결혼식 반주(현악, 관악, 피아노 등 - 지금은 그런 일을 하는 업체가 있지만 그 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나 행사시에 음악을 대행할 기획사를 생각하고 무선호출기를 장만하고 명함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일도 지지부진하여 제대로 끝을 보지 못하였다. 침묵하고 은거하기에는 한계에 달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짜증나는 궁핍을 벗어나고 새로운 돌파구를 열기 위해 자존심을 버렸다.
그 해 여름이 다가올 때 시장 통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자수성가할 수 있는 일은, 그래서 무대가 아닌 무대 뒤에서 내 꿈들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돈을 버는 것이라 결론지었다. 지금까지의 난관들은 어쩌면 모두 이상(理想)이 부족하고 모자라서가 아니라 현실의 제약 때문이었다.
해운대 시장 한 모퉁이에서 목청을 높였다. 해운대시장, 그 시장사람들의 인간미가 원초적으로 물씬 풍겨져 나오고, 그래서 여지껏 경험 못한 삶의 또 다른 방식도 누려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골라! 골라! 골라!.....”
그러나 그 역시 정답은 아니었다. 이것은 현실도피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크게 울려오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생각을 멈추어 버렸다.
음악에서 멀리 떨어져 가는 현실 - 옷 장사를 그만두고 현실에 적응 못하는 자기 속으로 움츠려 들어가 꼭꼭 숨어 버렸다.
그리고 또 겨울의 초입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기들은 자리를 잡아가고 후배들도 사회진출을 앞두고 정신없을 즈음의 연주회를 담당할 사람은 정신 못 차리고 꿈에 젖어 사는 나밖에 더 있으랴!
힘들게 규모를 키운 연주회의 위상을 다시 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10월부터 대관작업에 들어가고 프로그램을 잡아가면서 11회 연주회의 골격을 갖추어 갈 무렵 달콤한 제안 하나가 들려왔다.
낙하산식 인사이긴 해도 증권회사에 입사하라는 연락이었다.
일단 면접도 보았다.
그리고 연주회와 취직, 꿈을 향하고는 있지만 비틀대는 선배의 모습과 소박하게 현실을 살면서 작게나마 이른바 선배노릇을 해갈 떳떳함을 두고 심각하게 갈등했다. 그리고 결론은 ‘왜 하필이면 연주회 준비가 시작되고 난 후냐!’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엇엔가 미쳐있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연주회였고, Jin Harmony였다.
모든 것을 잊기 위해서라도 연주회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스폰서를 더 확보하고, 구하기 힘든 곡들을 찾아내고, 한 번이라도 더 악보를 들여다보면서 성심 성의껏 연습을 시켜 나갔다. 연습장소인 고은유치원을 매일 오가면서, 하루 한 두 끼를 라면으로 때우면서 마치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듯이 허우적거렸다.
오직 내가 생각하는 Jin Harmony의 생존(生存)을 위해서!
누가 알아 주리요, 누가 이해하리요!
한 번 뿐인 삶을 두고 나는 도박을 한다.
아니 꼭 신념을 현실화시킬 것이다.
무기력해 보여도 좋다, 짜증나 보여도 좋다.
나마저 자신의 믿음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미국민요, 우리가곡과 민요, 영화음악, 뮤지컬, 가요 그리고 Final Stage로 이어진 연주회는 막을 내려가고 문화회관을 찾은 관중들은 자리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이 때 앵콜로 불리워진 노래는 다시 ‘사랑으로’!
청중을 향해 돌아섰다.
그 자리에는 출연자와 청중이 따로 없는 교감의 노래만이 가득히 메아리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