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이제 다시 대학생이 되었다.
꿈에 그리던 음악도가 이제는 현실인 것이다. 같은 학년에는 남학생이 없어 완전히 꽃밭의 한 마리 나방이었다. 밖에서 만났으면 분명 아저씨라는 호칭으로 불렸을 여대생들에게 오빠라는 호칭으로 불리면서, 또 자취하는 오빠가 잘 챙겨 먹지 못할 것이라며 번갈아 가며 내 도시락을 싸오던 고마운 마음씨 속에서 잠시 꿈길을 거닐었다. 경북대 시절에도 음악과 수업을 몇 과목 들었지만 지금과는 체감온도가 달랐다.
그러나 충엽이가 입학금은 대신 내어주었지만 당장 생활비가 문제가 되었다.
다음 학기부터의 등록금은 스스로 준비해야 하기에 무조건 장학금은 받아야 했다. 주말이면 선배가 경영하는 웨딩이벤트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평일에는 고3시절 같이 공부를 했었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해온 학생들과의 전쟁이었다.
학과 분위기도 사뭇 달랐고, 과 내규도 전과는 많은 부분이 상이했다.
아직도 ‘집합’ 이 존재하는 수직적인 분위기는 내 나이로 인해 피해갈 수 있었지만 ‘대학생은 수업의 1/4을 빠질 수 있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는 풍토에서, 수업 한 번 빠지면 A학점은 없고, 세 번 빠지면 F학점을 띄우는 학생 관리로의 전환은 생활의 폭을 좁혔다. 그리고 나이도 많을뿐더러 수업 중에 남자가 나밖에 없으니 빠질 수도 없었지만 그것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데 빠지래도 빠지고 싶지 않았다.
무척 몸을 사리고 긴장하며 지내다가 분위기에 다소 적응하고 나서 주변을 둘러 볼 여유를 가지고 나니, 예전에 나도 그러했었겠지만 대충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이 한심하게 보였고, 남은 꿈에 그리던 음악공부인데 그것조차 소홀히 하는 이들이 안타까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양보했던 덕분에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마칠 수 있었으니 한 편으로 고마운 것도 사실이었다!
시험 때가 되었다.
동아대의 장학금 규정은 무척 까다롭다. 전액 장학금을 받으려면 두 학기 연속으로 학점이 4.0을 넘어야하고, 단과대 순위 2%안에 들어야 하며, 재정이 허락하는 범위라는 것이다. 그 등위와 수준 안에 목숨 걸고 들어야 했다. 시험은 곧 전쟁이었다. 음악분석 과목 같은 경우는 한 학기 분량의 악보를 통째로 외웠고 대부분의 과목을 나름대로는 완벽에 가깝도록 준비를 했었다.
결과는 수석(首席)이었다!
수강학점 21학점, 수업시간 32시간, 취득학점 평점 4.14의 성적표였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름이 무르익고 작년에 이어 두 번째의 ‘Jin Harmony 하계 가족 음악회’ 를 개최했다. 정기연주회와는 달리 가요를 위주로 하여 관중과 같이 부를 수 있는 무대를 꾸며보았다. 그리고 2학기는 계속되었고, 나를 너무 좋게 평가하신 교수님으로부터 넌젓이 유학의 언질을 들었고, 본격적으로 졸업이후의 진로에 대한 방향설정을 모색해 갔다.
두 학기 연속 수석을 목표로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13회 연주회의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문화회관에 대관절차를 밟으며 선곡 작업을 시작했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일들 - 나의 과업일 수밖에 없는가! 또 한 번 학기말 시험이 치열하게 끝이 나고 연주회 준비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 한국민요를 테마로 삼아 선곡을 마쳤다. 스폰서로 도와주시는 선배님들을 찾아뵙고, 인쇄물 작업, 방송국 업무 등을 세세히 살폈다. 반주자로는 동아대의 부산진고․진여고 동문회 후배인 피아노 전공의 문지영이를 선임했다. 연습장소로 사용해 왔던 고은유치원의 이용이 불가능해지면서 좁은 지하 연습실(예원)에서 무릎에 무릎을 붙이고 힘겹게 연습을 했다.
아우들의 고생이 무척 심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에 참가해야 하고 밤이면 포스터를 들고 거리를 뛰어다녀야 했다. 아울러 배당된 고가(高價)의 입장권도 팔아내야 하니 2중․3중의 어려움이 있었다. 어찌 이들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으리!
또 일 년을 지탱해 줄 하루의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 오듯이 그렇게 모였고 우리는 노래했다.
과정을 알 길 없는 사람들은 만들어진 무대만을 보고 우리를 평가하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연주활동은 바보 같은 남자들의 희생 위에 서 있다. 그리고 아픈 속내를 감추고 겉으로는 웃고 있는 것이다.
이 지리한 장기전에 지쳐버린 사람도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점점 더 현실로 받아들이고 즐기려 생각하는 이가 더 많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