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마지막 콘서트
3학년 2학기의 성적이 발표되었다.
4.11로 다시 한 번 수석의 기쁨이 주어졌다.
이제는 전액 장학금이 졸업할 때까지 주어지니 한 시름은 덜 수 있었다.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지난 1년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에는 다른 생각이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리포트를 제출해야 하고 학기당 한 편씩의 논문을 써야했으며, 그 수준도 전직(前職)이 있으니 만큼 남들보다 뒤질 수는 없었다. 마치 철학과 대학원을 다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학교 전공실보다는 도서관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했던 시간들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피아노를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었고, 작곡이나 성악을 조금씩이라도 실질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그런 바람이 더욱 절실해져 갔다. 진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
그것은 지휘요, 무대가 아닐까하고 자가진단 해 보았다.
도서관에서 침묵하던 시간들이 지나고 머릿속에 그리던 대형무대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 아직은 열정이 살아있음인가! 95년의 여름에 가칭 ‘(사설)부산 남성합창 연합회’를 결성하여, 120명의 남자가 한 무대에 선 「Glee Chorus 창단 연주회」를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치러냈다.
부산진고의 Jin Harmony와 혜광, 대동, 내성, 경남고교 OB팀이 그 유사한 성격으로 결집되어 대규모 연주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각 합창단별로 2곡씩의 합창을 했고, 2명의 성악가를 Guest로 초청하였으며, 연주회의 시작과 끝은 출연자가 전원 무대에서는 연합합창으로 꾸몄다.
그 연합합창의 지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내가 맡았고, 팀별로 임원들이 선발되어 일을 추진해 갔다. 기획에서 연주까지 일을 해 나가면서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은 역시 Jin Harmony의 자부심이었다. 이미 4번의 문화회관에서의 연주회와 진하게 부딪쳐 온 시간들은 분명 남들과는 차별화된 오늘을 보이고 있었다.
이 공연을 준비하게 된 과정에는 세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음악대학 졸업을 앞두고 전공의 특성상 졸업연주가 논문제출로 대체되는데, 나름대로는 지휘전공의 졸업연주회를 한다는 각오로 일을 추진했던 것이요, 다음은 Jin Harmony의 세 번째 여름 연주회라는 상징성이었는데 1년에 두 번의 공연으로 늘린 연주회수를 줄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이유는 사적인, 너무나 개인적인 것이었다.
같이 음악적 인생을 공유했으면 하는 한 여인에 대한 무대에서의 프러포즈였고, 헌정된 선물이었다. 그리고 확인한 것은 아직은 내 가슴에 열정이 살아 숨 쉬고 있었으며,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동화(童話)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뿐 이었다! 현실에 동화는 통용되지 않았고 내 인생은 내 인생일 수밖에 없었다.
졸업을 앞 둔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면서 거의 모든 시간은 졸업논문을 위해서 도서관에서 보내야 했다. 그 일련의 숨 가쁜 과정에서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한 윤곽을 잡아갔다.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유학이 필수라는 것과 그 유학이 몰고 올, Jin Harmony가 겪게 될 파장의 최소화에 관해서 나름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
왜, 무엇을 위해 유학을 가려고 하는가!
그 전후(前後)에 Jin Harmony가 없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한 번의 대학 생활은 그렇게 끝을 보이고 있었다.
싸늘한 바람이 속삭인다.
겨울입니다!
최소한 당분간은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14회 정기연주회의 준비가 시작되었다.
문화회관 대강당의 여섯 번째 대관이 이루어졌고, 그 내용에서는 욕심을 부렸다. 몇 해 전에 러시아 민요를 처음 접하고 그 스케일과 공감되는 정서에 전율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연주를 위해 백방으로 악보를 수소문했으나 구할 길이 막막했다. 유학을 떠나기 전의 고별연주회를 앞두고 선곡을 하면서 너무도 러시아 민요를 무대에 올리고 싶었다. 그리고 감히 용기를 내었다.
러시아 민요의 ‘국내초연(國內初演)’ 을 위해 러시아 합창단의 Tape와 오선지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이 후 한 달 이상 밤을 꼬박 지새워 합창악보, 가사채집, 오케스트레이션(관현악보화)하면서 매일 연습진도에 맞추어 악보를 그려갔다. 러시아음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부산진고 11기 조희영 선배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러시아어 가사로는 부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몇 곡을 더 편곡하여 연주회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부산시내 음악대학 학생 중에서 물색하여 타악기가 위주로 된 소규모 관현악단을 구성하였는데, 현악 파트는 자금 관계상 신디사이저로 대체했다.
이제 이 연주회가 끝나면, 하고 싶어도 최소한 당분간은 할 수 없기에 애틋한 마음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그러나 안타까이 시간은 흘러가고 너무도 바쁘신 아우님들은 연주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서 투자한 노력에 비해 성과를 장담할 수 없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듯, 그렇게 Jin Harmony의 1세대를 마감하는 연주회는 막을 올렸다.
무리가 따랐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평소에 잘 듣지 못하던 러시아 음악은 신선한 충격으로 평가되었으며, 마지막 무대를 빨간 장미꽃으로 고별의 아픔을 연출하고 표현한 연주회는 아쉬운 끝을 보였다.
피로연, MT도 끝나고 모두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뒤 홀로 남은 나는 처절한 피울음을 울었다. 왜 이다지도 행복은 멀리 있단 말인가! 그리고 나는 기약 없는 길을 떠나야만 한다는 말인가!
친구들은 얘기했다.
내가 행복하다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내가 부럽다 했다.
그러나 나는 반박했다.
남들처럼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냐고, 하루의 큰 행복을 향한 364일간의 고통은 어디서 보상받느냐고.......
그리고 내가 모셔야 할 부모님은........
훗날 먼 훗날, 살았다고 사람답게 살았다고 얘기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