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이별의 서곡 - 사전지식
‘과거는 흘러가게 그냥 두는 것’ 이란 말이 있다.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더 이상 흐르지 못해 막히고 뒤틀려버린 현재를 해결하고자 이 글을 적고 있다. 이번 장에서는 그 당시 나를 오해를 하고 파국으로 내달린 배경에 존재했던 몇 가지 사전지식을 말하고자 한다. 아래의 사례들은 모두 엄연한 진실이다.
< 사례 1. 다단계 >
처음 미국을 다녀오고 난 1997년의 일이다.
당시 유행병처럼 번져가는 A라는 다단계회사가 있었다.
우리 중에도 몇은 그 회사를 마치 종교처럼 맹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내게도 좋은 아이템이고 Jin Harmony를 위해서도 괜찮은 생각이니 가입해서 활동해 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대학교 4학년 시절, 그와 유사했던 영업직을 경험한 내게는 허구로 들렸기에 단호히 거절했었다.
개인의 일이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내가 없던 시기에 많은 주변 선, 후배를 그 회사의 교육장에 데려가고 가입시키려 했었다는 우려 섞인 얘기를 전해 들었다.
조용히 당사자를 불렀다.
확실히 해두기 위해 좀 심하게 나무랐다.
‘같이 성공해 보자는 의도는 좋다!’
‘그러나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그야말로 둘 다를 잃게 된다는 것은 생각해 보았느냐?’
‘친구 사이에 왜 돈거래를 하지 말라고 하느냐? 돈 잃고 친구도 잃게 되기 때문이지 않느냐!’
‘Jin Harmony는 노래하는 선, 후배들의 모임이다.’
‘일이 잘못되면 너 어떻게 할 것이냐? 책임질 수가 있느냐?’
‘당장 그만두고 다시는 후배들 끌어들이지 마라!’
다행히 적극적으로 회유되어 활동한 사람은 몇 안 되었기에 그 정도 선에서 다시는 Jin Harmony 안에서는 그런 언급을 안 하기로 하고 끝은 맺었다.
이 역시 그 당사자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아 내게 정이 떨어지고 Jin Harmony를 멀리하게 된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 사례 2. 어느 집들이 >
모두들 결혼을 하고 이어서 집들이란 것을 한다.
90년대 중반, 모두가 황당하다고 느낀 어느 집들이가 있었다. 메뉴의 선택과 규모는 집주인의 고유권한이고 누가 뭐라고 할 부분은 아니겠지만, 이 날의 메뉴는 좀 황당했다.
당시 분명히 집들이라고 알고 선배들끼리 봉투도 준비해 갔었고, 그냥 저녁식사가 아니라 집들이라는 재확인도 했었다. 일전에 집들이한다고 가니 사람도 없고 음식도 준비가 안 되어있어 한바탕 해프닝이 있었기에 이 날의 기대(?)는 더욱 컸을 것이다. 아무튼 두 번째로 성사된 집들이를 위해 대략 스무명 정도가 갔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선배들은 방안에, 후배들은 마루에 자리를 잡았다.
고참 기수 중에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자기 친구 집들이에 갔더니 카레라이스가 나왔는데, 설마 오늘은 아니겠지?’ 라고........
곧이어 음식이 나왔다.
나온 음식은 국수!
집주인은 모르게 수군거림이 있었다.
좀 전 그 친구 왈,
“와! 오늘 정말 카레라이스 먹고 싶다!”
민망한 집들이는 다들 바쁘다고 간단히 끝을 맺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후에 있었다. 어느 후배에게서 전화가 와서 지금 집들이의 주인공이 따지러 가고 있으니 잘 무마하라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대화 끝에 실수로 집들이 얘기를 당사자에게 했는데, 하고 보니 대략 난감하여 그 문제의 말을 하고 욕한 사람이 나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냥 편하게 얘길 꺼냈는데 당사자가 예민하게 화를 내니까 당황해서 말을 돌린다는 것이 나에게 책임을 전가시켜 버린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그 친구가 찾아왔고,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만 하고 후배에게 싫은 소리를 한참동안 들어야 했다. 아무리 선배지만 왜 개인의 문제를 가지고 욕하고 뒤에서 딴소리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한 사람도, 그 얘길 일러바친 사람도 따로 있다.
세 치 혀끝이 불러온 화(禍)일 것이다. 내가 뒤집어 쓴 것으로 일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때의 감정이 뒤에 두고두고 앙금으로 남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 사례 3. 회계장부가 없었다! >
완전 귀국 후, 다시 일선에 복귀하며 몇 가지를 점검했는데, 총무는 내가 없었던 2년 남짓한 기간 동안의 회계장부가 없다고 했다. 전임단장이 자료를 넘겨주지 않아서 회계정리를 할 수 없었다는데 여러 번 얘기했음에도 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그 사이 바뀐 단장도 몇 차례 전임단장에게 그 문제에 대해서 재촉했는데도 넘기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자료도 없고 아무런 정리를 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를 만나 확인해 보니 역시 아무런 자료도 남아있지 않았다. 자료와 회계장부에 대해서 물었는데 도리어 그는 자기 돈을 더 썼으면 썼지 공금을 축내지는 않았다고 화를 내는 것이었다.
질문은 그가 공금을 유용했느냐 아니냐가 아니었다. 공금이라고 해봐야 우리가 운영하는 자금이 남들 껌 값밖에 안 되니 유용할 것도 없었고, 애당초 그런 의심은 해보지도 않았다.
문제는 전임 단장이 직접 자금을 집행했기 때문에, 총무는 영수증 등 자료가 필요했는데 그것을 전달받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새로 단장 직을 맡은 이는 동기요, 총무는 후배니까 계속 그 문제를 재촉하기가 껄끄러워 내게 확인을 부탁했던 것이다.
결국 총대를 메고 직접 확인한 내게 다른 문제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져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다.
< 사례 4. 남녀상열지사 >
Jin Harmony를 점철한 러브라인을 다 언급할 수도, 알 수도 없지만 이 사태의 이면에도 이 문제가 깊이 관여되어 있기에 간략한 논의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요 민감한 사안이기에 간단히 지나가도록 하겠다.
불씨가 되었던 사안 중에 하나는 선, 후배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게 얽힌 3각관계가 문제가 되었는데, 내가 그 자리에 없었고 있다 해도 말하기 거북한 후배의 입장을 대변하고 보호해 준 것이 문제였다. 친구지간에도 3각관계는 난감한 사안인데, 선, 후배사이의 3각관계는 더욱 우스운 일 아닌가!
나는 상방과실이라고 보았다. 선배의 여자를 넘보고 행동을 경솔히 한 후배도 잘못이고, 후배를 믿지 못해 의심하고 문제를 키운 선배도 그리 잘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했다. 약자의 편을 드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고, 대화의 자리에 없던 후배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대화중에 있었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면서 앞뒤가 생략되고 와전되면서 또 한 명의 강력한 안티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문제를 빨리 봉합하고 매듭지으려는 마음이 강하기도 했지만, 사안의 핵심이 된 후배를 신뢰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 당사자 후배는 아마 이런 것이 문제가 된 줄 알기는 할까 모르겠다.
< 사례 5. 그 녀석 믿지 마라! 못 믿을 놈이다! >
“그 놈 말 믿지 마라! 그 놈 원래 입도 싸고, 신빙성도 없으니 무시해라!”
앞 뒤 사연을 생략하고 이런 말을 누가 자기에게 했다고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나 같아도 굉장히 화가 날 것 같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대화하고 있던 사람을 A, 그 놈(?)은 B라 가정하고 말을 풀어간다.)
이 말을 전해들은 B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하며, 나를 철천지원수로 치부하게 된 계기가 된 사건이다.
“그동안 내가 Jin Harmony와 형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이런 대접을 하냐! 그 XX, 다시 보나 봐라!” 는 말을 남기고서.......
문제가 된 말은 분명 내가 B를 지칭해서 한 것이 맞다. 내가 한 말이긴 한데 그 말이 나온 앞뒤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다. 앞뒤의 말을 이어붙이면 충분히 이해될만한 내용인 것이다. B를 욕하고 폄하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라 B가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했던 말을 A에게 이해시키고 오해를 풀게 하기 위해서 했던 말의 일부분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술자리에서 주고받던 가벼운 농담수준이었는데, 이것이 굉장히 심각한 표현으로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이 말을 왜 A는 B에게 전달한 것인가!
아파하던 A를 치유하고 진정시키려 했던 말인데, 정작 A는 내 말의 본뜻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던가 보다. 그리고 B가 입이 가벼웠다는 것은, 나에게 책임을 전가시킨 다른 사건으로 증명할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기도 했다.
술자리에서 둘이 나눈 대화를 일러바친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전달하려면 있는 그대로 해야지 왜 앞뒤는 잘라버리고 듣기 싫어할 그 말만 전하는가? 아마 나의 중재노력을 A가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행동은 너무 비열하고 이기적이었다. 이것이 결국 편 가르기의 또 한 축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훗날 B와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억도 못했다.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정작 A에게서는 사과를 들은 적도 없다.
아마 그 역시 기억조차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