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이별의 서곡 - 뒷담화



1998년 9월 27일, 정기모임에는 부산에 거주하던 3기에서 5기까지 대부분의 선배들이 참석했고, 후배들은 10기 1명, 15기 2명이 있었다. 그 날의 분위기는 1 : 다수의 격전이었다. 후배들은 말 할 엄두를 못 낼만큼 격렬했으며, 점점 나와 선배들의 극심한 대립으로 옮아갔다. 전반적인 내용은 전편에 기술했으니, 이번에는 그렇게 된 배경에 있었던 선배들의 뒷담화를 적어보려고 한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나왔으면 금방 오해가 풀리고 웃고 넘길만한 사소한 문제라고 보이는데, 삼삼오오 술자리에서 나온 이런 얘기들은 몇 사람의 주도에 의해 사실이 되어버렸다. 안 그래도 말이란 것이 전달되면서 심해지기 마련인데, 말을 전달하는 사람이 본인의 잘못과 앞뒤사정을 빼고 전달했으니 그 결과는 고스란히 나의 잘못이 되고만 것이다.

이것은 나를 제외하고 선배들만 따로 모인 자리에서 나왔다는 내용으로, 전해 들었던 내용이다. 전달과정에서 어느 정도 변질은 있을 수 있겠으나, 이러한 얘기가 오고갔음은 확인한 사항이다. 대략 그 내용과 나의 답변을 적어본다.


당시 의구심의 요지는 이랬던 것 같다.



< 1. 미국에서 들어온 지 한 달이 되도록 들어온 것에 대한 설명이 왜 없느냐? >


- 찾아온 사람도, 물어 본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설명하나. 일일이 전화해서 보고해야 선배 된 도리를 다하는 것인가?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얘기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당시 개인적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었는데, 나와 함께한 몇 차례 술자리에서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토로했다. 많은 얘기가 오고갔는데 정작 내 문제는 불필요하고 악의적인 내용만 전달되어서 문제를 키웠다. 그의 당시 고충은 이해하나 그의 편파적인 말 전달이 사건을 키운 배경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 2. 포기하고 들어왔으면 모금해 준 자금에 대한 해명을 왜 안 하느냐? >


- 결혼식 부조금 내고, 신혼여행 다녀온 사람에게 어디에 썼느냐고 물어보는 격이 아닌가! 호의호식하지 않았음을 모를까?

유학 간다고 선배들이 모금한 준 자금은 정확히 176만원이었다. 그들에 대해 미안함과 감사함을 진하게 느꼈던 소중한 도움이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어떻게 썼는지 해명하라고 하는 것은 납득이 잘 안 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어떤가? 내가 해명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리고 나한테 직접 그렇게 요구했으면 못할 것도 없지만, 뒤에서나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좀 비겁하지 않은가! 고마움이 치사함으로 바뀐 것은 나의 옹졸함 탓이겠지만, 그들의 이런 생각은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정도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단초를 제공한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 만약 감정 섞어서 대답했다면,


“그 돈으로 비행기 값 했는데 2번 왕복하니 많이 모자라더라!” 이라 했을 것이다.

 

나를 한없이 비참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던 말이 아닌가 돌아본다!



< 3. 더 어린 후배 이광규는 미국에서 잘 적응하는데, 선배가 되어서 그것도 견디지 못하고 짐 싸서 들어오느냐? 그것도 두 번씩이나! >


- 아이러니 하게 광규는 유일하게 내가 한국에 돌아온 것이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었던 행동이라 이해하고 있었다!

굳이 해명하자면 성악과 지휘는 입학 시스템 자체가 다르고, 무엇보다 그와 나는 길이 확연히 다르다. 성악은 토플도 안보고 목소리 하나 좋으면 장학금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가 있다. 광규 역시 어렵긴 했지만 나와 비교할 때는 쉬운 길이었다. 학교에서 장학금은 물론 학기당 $ 1,200의 지원금도 받았으니 아무런 근거가 없었던 나와의 객관적 비교가 될 것이다.

그런 현실적인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적의식일 것이다. 광규는 자기 개인의 길을 가는 것인데, 왜 나와 비교를 하는 것인가!


시행착오는 인정하지만, 나는 분명히 Jin Harmony를 위해 미국행을 택했었다.

그리고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계속 남아있으면 그냥 평범한 일상을 사는 재미교포 이상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맞았을까? 그냥 미국에 눌러앉아 살겠다고 했으면 잘했다고 칭찬해 줄 것인가?

나를 자신을 먼저 생각했다면, 조금만 이기적으로 생각했더라면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장하다는 소리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욕먹을 짓은 결코 아니지 않은가?

전쟁 난 것이나 마찬가지인 한국에 죽기를 각오하고 들어온 것이 어떻게 욕먹을 짓인가?

누가 내게 돌을 던지는가?



< 4. 예원 전세금까지 빼달라고 해서 가져갔다 >


- 먼저 전제하고 싶은 것은 당시 선배들이 모금해 준 금액 외에 내가 가져간 자금에 대한 부분이다. 그것은 당시 전체회의에서 의결을 그친 사안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언급되는 선배들과의 마찰과 비교해서는 논의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평생을 안고 살아가는 부분이지만 최소한 선배들에게는 책임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선배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권리나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Jin Harmony의 주 수입원은 단원들의 회비와 연주회 티켓판매이다. 회비만 가지고는 매달 적자였으나 연주회를 통해서 만회하고 어느 정도 자금을 모을 수가 있었다. 당시 총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 선배들은 협조를 하지 않았다. 회비도 잘 안 내고, 특히 연주회 때는 더욱 몸들을 사렸다. 쉽게 말해 재학생과 일부 대학생들의 코 묻은 돈으로 예원은 유지되고 지켜져 왔다.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한 부분이고 결정도 쉽지 않았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돌이켜 보라!

과연 몇 명의 선배가 회비를 납부했으며, 몇 명이 연습에 제대로 참여했으며, 몇 명이 책정된 티켓대금을 납부했는가!

늦게 나타나 무대에 서 주는 것을 선배의 도리라고 생각지 않았던가!

그래서 선배들에게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후배들에게는 무한책임을 느꼈고, 그들을 대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굳이 따져보려는 사람이 있으면 예원 캐비닛에 자료가 남아 있을 것이니 확인해 줄 수도 있고, 당시 총무들이 증언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선배들이 모금해 준 부분에 대해서만 언급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원 전세금까지 빼달라고 해서 가져갔다!”


- 나는 이 말을 전해 듣고 정말 화가 났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이 말 한 놈 찾아가서 주둥이를 확 찢어놓고 싶었다.

가난하고 능력 없는 내가 미국을 가려했던 것 자체가 잘못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후배들은 고맙게도 도움을 주려했고, 나는 눈물 나게 고마운 마음이었다. 하긴 그런 도움이 없었다면 유학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정확히 말해 애초 선배들이 모금해 주기로 약속한 금액은 300만원이었다. 그런데 출국 얼마 전까지 모금된 금액은 176만원이었다. 당시 모금을 담당했던 단장이 워낙 개인 업무에 바빠서 제대로 신경을 못 썼던 것이다. 약속은 했고, 출국 날짜는 다가오니 단장은 미안해하며 약속한 사람들이 다 낸다고 했는데 모금할 시간이 없으니 우선 예원 전세금 중 100만원을 월세로 돌리고 가져가라고 한 것이다. 자기가 다 받아서 다시 채워 놓겠다고 말이다.

난감하고 미안한 심정이었지만 출국날짜가 다가오는 관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그 후로 단장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수금을 등한시해서 결국 100만원은 모금되지 못하고 증발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가져간 자금은 정확히 276만원이었고, 그 중 순수하게 모금된 금액은 176만원이었던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전세금까지 가져가게 된 것은 사실이나, 나는 결코 전세금을 빼달라고 먼저 말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어찌 그럴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워낙 치사하게 나오는 이가 있어서 갚아주려고 기부자 명단과 금액을 알려달라고 했는데 이 역시 없다고 했는데, 이 요구가 역시 그를 또 자극했다고 한다.


후에 이 전세금 부분은 전체회의에서 대손처리가 되었고, 묻어두기로 한 사안이다.



< 5. 모임 회비도 안내고 자기 밥벌이도 못하는 사람과 무엇을 하나! >


- 이 얘기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사실이니까!

물론 그 당시의 분위기에서 감정적으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동안의 내 수고가 참 헛된 것이었다는 자괴감을 가지게 하는 대목이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내 밥벌이하려 예전에 Jin Harmony를 포기했더라면 그가 그 자리에서 그런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 선배들의 모임은 있었을까? 지금 아무리 변했다고 하나 선, 후배가 고리에 고리를 물고 끈끈하게 연결된 오늘이 있을 수 있었을까?

너무 정확하게 맞는 말이라서 너무 아픈 말이다!

많이 심했던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글을 읽는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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