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모든 것이 한낱 허망한 꿈일지라도



사회적․경제적 감각을 소유한 분들은 이 글을 어떻게 읽을지 무척 조심스럽다. 몇 십년이 생략된 이야기들이 두서없이, 또 현실감 없이 진행되다 보니 자칫 신기루로 취급당할 소지가 많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100%에 수렴한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 확률을 불식시키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우리들의 믿음과 의지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길뿐이다.

구해야 주시고, 두드려야 열리며, 소망이 있어야 결과도 있는 것이다. 바라는 바가, 또 간절히 원하는 꿈이 없다면 무슨 희망의 내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평범한 삶이란 마음속의 바램을 마음속에만 담아두는 일상의 연속이 아닐까?

계기가 주어지고 용기가 더 해지면 그 일상은 틀을 깨고 날아오른다. 그리고 선택의 순간, 앞을 막아서는 장벽은 ‘안정이냐, 모험이냐’ 의 기로이다. 나는 모험을 택했다. 지난날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은 세월을 두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어야 할 것이다. 동일선상을 출발한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나아간다면, 그 끝은 너무나 달라져 있을 것이다.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문득 ‘죽음’ 을 생각했다.

안개 자욱한 현실 속에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을 때, 지리한 삶은 무기력한 자기존재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어둠은 차라리 빛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했는가?”


대답했다.  


“아니다!” 


다시 물었다.  


“여기서 포기할 것인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럴 수는 없다!”


또 물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을 했다.  


“결론은 정해져 있다. 가느냐, 마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한다. 죽음은 그 뒤의 일이다. 지금은 그 죽을 용기마저 삶에 필요한 시간이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흘러왔다.


정말 바라는 모든 것들이 한낱 허망한 꿈이라고 결론이 난다면, 무지개를 좇아 내달리던 소년의 손에 잡힌 무지개가 한 조각 허상이란 것을 알아버렸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

그토록 집착했던 시간들은 또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가?


우선 처참할 것이다.

온 몸의 힘이란 힘은 다 빠져나가고, 서 있을, 숨 쉴 기력조차 모두 소멸해 버릴 것이다. 망망대해를 일엽편주에 몸을 의지해서 나아가다가 폭풍우 몰아치는 어느 날, 그 작은 배마저 강탈당해 버린 허무만이 남을 것이다.

스스로가 가지를 잘라 버리고 범위를 좁혀 온 인생의 방향은 더 이상의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제거해 버렸고, 오로지 숙명이라 여기고 가야 하는 세상살이가 힘에 겹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그 많았던 순간들, 그때마다 다가서던 도움의 손길과 샘솟았던 까닭 모를 추진력, 원망도 했었다.

다시금 힘을 내어 일어 설 때마다 다짐을 했었다.

의지가 꺾인다면 오기로라도 최소한의 결과는 만들어 내리라!

그곳에 희망은 존재할 것이며, 누가 해도 해야 할 일이리라! 그때 가서야 지난날의 어두운 그림자는 빛을 볼 수 있을 것이고, 상처뿐인 영광은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고난이 없으면 열매도 없고, 시련이 없다면 결실도 없다고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든 과정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생존을 위해 살아온 날들은 지나갔다. 이제껏 나열한 것들은 먼 미래에 대한 상상이며,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不可知論의 연속이다.

문제는 이제로부터 꿈이 손에 잡히는 날까지의 일련의 과정일 것이다.

이 글이 사업계획서가 아닌 고로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기 어렵고, 또 아직은 전체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그럴 수 있는 단계도 아니기에 생략되고 있지만 다가올 시기에 일어날 혼란과 시행착오는 불 보듯 당연하게 예견할 수 있다.

가능성은 50%이다.

성공은 너무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희망이요, 이제 끝으로 모든 것이 허망한 꿈으로 결론 날 때를 가상해 본다.



먼저 극단적인 집착에서 풀려나게 된다면 차라리 안온한 느낌이리라.

그리고 그것은 결코 슬픔만은 아닐 것이다.

세상을 사는 다양한 방식 중에 이 길이 나의 길이었다고 자위하게 될 것이다.

꿈이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남아 있는 보람도 많을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다 포기하고 버려도, ‘사람은 남도록 해야 한다’ 는 것이리라!

우리가 노래를 하고, 꿈을 키우는 것도, 같이 향유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건강과 돈, 명예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그 보다 더 소중한 것은 ‘대인관계’ 라고 믿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 이란 말을 빌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람들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

기성세대의 삶을 보자.

급박하게 자기 앞가림을 위해 달려가다가 어느 날 生의 텅 빈 자리를 발견하고 허탈해 한다. 그리고 사람 속에서 살내음 맡으며 살고 싶어 안타까이 애를 쓴다. 우리들 부모님의 삶을 반추해 보자. 무엇을 위해 사셨을까! 당신들의 부모님을 위해 사셨고, 자식들을 위해 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당신들의 삶은 무엇으로 보상받는다는 말인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작은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이라면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은 지울 수 없으리라!


푸시킨은 이렇게 읊조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픔의 날 지나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모든 것은 일순간에 지나간다. 그리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미래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는 반면, 아주 소박한 바램도 있다.

모든 것이 허망한 꿈일지라도, 사람은 있고 노래는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1주일간의 거대한 행사는 불가능할지라도 Jin Harmony 제53회 정기연주회는 지금처럼 순박한 노래와 규모로라도 열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53살 차이의 인생 파노라마는 노래에 녹아, 情에 섞여 當爲의 현실이 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그분에게로 돌아가는 날,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그 날이 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니라면, 이런 묘비명 한 구절은 소망한다.


 「그는 살다 갔노라. 진정 살다 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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