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얽매인 사슬



졸업을 했다.

1기들은 대학에서 혹은 대입학원에서 나름의 길을 걸어야 했다. 나는 재수생이란 오명 아래 모든 것을 접어 둔 채 제 앞가림하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고, 떳떳이 후배들 앞에 설 수 없었기에 더욱 가슴 답답한 시간들이었다. 4기들이 바라본 선배의 첫 인상은 그래서 초라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한여름의 더위를 피해서 재수생 4명이 동해안의 ‘나사리’ 라는 어촌을 찾았다. 기모, 진근, 정헌 그리고 나 - 내년에는 꼭 후배들이랑 같이 오자고 나누던 대화 속에 부끄러운 선배의 아픔이 녹아 있었다. 선배이기에 느껴야 하는 책임감은 너무나 무거웠다. 치부를 감추며 쓴웃음을 파도에 날렸다. 이 날의 모임은 오늘에까지 이어져서 매년 여름이면 실시하는 ‘Jin Harmony 하계 M.T’ 의 원조로 기록되었으며, 그 다음 해에 정말 후배들과 그 바닷가를 찾았던 기억이 난다.


1년은 그렇게 실체 없는 그림자로 흘러만 갔다.

그런 그림자에게도 음악은 절대적이었다. 학력고사를 끝내고 연주회를 구상하다가 자금마련의 방법으로 시도하기로 한 것이 ‘일일찻집’이었다. 달리 충당할 방법도 없었지만 1기 일곱 명의 결집력을 믿었기에 결정할 수 있었다. 서면 대로변에 있었고, 당시 부산에서 레코더판(LP)를 가장 많이 보유했다던 ‘동양다방’을 33만원에 임대하여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아무런 경험이 없던 우리에게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고 불가항력(不可抗力)이었다. 그 일일찻집의 성공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했지만 결국 십만 원의 적자를 남겼다.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집에 갈 수는 있었지만 그 주민등록증을 다시 만져 볼 수는 없었다. 주인의 집요한 독촉에 개인당 얼마씩을 거두어서 해결은 했지만 그 씁쓸함은 상당한 여파를 남기게 된다.


그리고 2기가 졸업하던 날 - 3회 정기연주회가 ‘연지제일교회’에서 있었다.

가슴과 가슴으로 담아 온 우리들의 노래를 그냥 썩힐 수는 없었다. 깨어지고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우리는 노래해야 했다. 연주회장을 구하기 힘들고, 일일찻집 적자라는 홍역을 치룬 뒤라 자금이 없기도 매일반이었다.

연주날짜 1주일 전까지 마땅한 장소를 구할 수도 없었다. 이리저리 수소문하다가 2기 양정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이 시무 하시는 연지제일교회가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완고하신 목사님이시기에 반신반의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1시간 후에 회신이 왔는데 어렵게 승낙이 떨어졌다.


창단후의 제1회 정기연주회 보다는 관중이 훨씬 적었지만 준비한 기간에 비하면 200명이 넘어서는 관중숫자는 놀라운 관심이었다. 프로그램은 등사기로 밀고 초대권은 구두로 대신하여 경비를 최대로 줄였다. 반주해준 신의정이는 Jin Harmony가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동참하면서 무척 고생이 많았다. 선물 하나 챙겨주지 못했었는데 후에 10회와 12회 정기연주회 때 또다시 반주를 해주는 고마움을 보여주었다.

이 날 1, 2기는 원래 같이 밤을 보내기로 약속한 집에서 쫓겨나서(?)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서로의 체온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초라한 몰골이었지만 순수가 있었고 아름다운 마음들이 있었다.

지금 그들의 모습은 많은 변화를 겪어 다양하게 변화되어 그 때 일들을 부정하고 무가치하게 여길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에 공감하던 내용들은 분명 실재였고 가치를 지녔었다.


뒤에 다시 언급되겠지만 Jin Harmony는 부산진고등학교를 졸업한 동문들이고 음악과 노래를 사랑하는 동호인들이라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학창시절의 치열한 과정을 거치고 대학과 사회로 진출하고 나면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복하고 있다. 사람은 현실을 좇아 살아가지만 마음은 언제나 무엇을 갈망하지 않는가! 지금쯤은 세파(世波)와 거듭되는 활동에 지쳐버린 것도 사실이겠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우리의 가치관은 지향점을 상실해서는 안 될 것이며 사람과 음악에 대한 신뢰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 있어 과거의 Jin Harmony가 현재의 Jin Harmony에게 남긴 유산이라면 노래 없이 겨울을 참아 내지 못하게 된 것과 어디에 있거나 회귀본능(回歸本能)을 갖게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지금의 Jin Harmony가 ‘가는 이 잡지 않고, 돌아오는 이 말리지 않는다’ 는 불문율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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