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무대 위의 조명은 꺼지고
1986년 새학기가 시작되고 다시 대구로 돌아온 나는 또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생각이야 늘상 Jin Harmony를 맴돌고 있었지만 몸은 현실을 쫓아갈 수밖에! 그러다가 2기 영석이가 그 해 4월에 입대한 것을 시작으로 하나 둘 국가의 부름에 순종했다. 진근, 충엽, 용광, 정헌이가 차례로 푸른 제복에 몸을 실었다. 기모는 고시 공부한다고 서울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고, 남은 것은 은배 하나 뿐!
크리스마스 이브에 혼자 서면에 갔다가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은배에게로 이어졌다. 커피 잔을 놓고 마주앉아 옛날이야기를 하다 보니 괜스레 서글퍼지는 것은 한 쪽 가슴 횅하니 뚫린 구멍이 있기 때문인가?
다시 겨울 - 그것은 동면(冬眠)하던 Jin Harmony가 깨어남을 알리는 서곡인가!
방범대원을 해야 하기에 크리스마스 다음 날 2기 기장인 오건이랑 후배들에게 연주회에 대한 기본적인 것들을 부탁해 놓고 대구로 떠났다. 방범 일을 하던 어느 날 몸도 좋지 않고 기분도 왠지 이상하여 파출소장에게 양해를 구하여 3일간 쉬기로 하고 부산에 있는 집으로 내려왔다. 몇 군데 전화를 했는데 통화하지 못하고 마침 4기 성문 이가 집에 있어 연락이 닿았다. 어디서 연습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아직 모르고 있느냐는 식의 아리송한 답변을 하는 것이었다. 다그치니까 하는 말이 자금이 없고 사람도 모이지 않아서 연주회를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그 날 저녁으로 몇 몇 일을 맡고 있는 후배들을 모아서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도저히 지탱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정이야 모를 리 없지만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자기들끼리 그렇게 결정해 버리다니 한 순간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 했다. 이렇게 힘들게 연주회를 할 바에야 1년은 건너뛰면서 자금도 모으고 힘도 길러서 보다 좋은 환경에서 하자는 것이었다.
후배들의 말을 심정적으로는 동의하면서도, 우리의 과거지사로 보아 1년을 쉰다면 힘이 비축되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연주회를 치러 낼 기력도 잃고 만다고 설득했다. 비록 불안한 돌멩이 하나라도 제자리에 있어줘야 징검다리가 되고 또 그것을 밟고 지나갈 수 있음을 역설했다.
선배의 말이라 억지로 수긍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일을 추진하기로 하고 방범대원하고 나서 받을 돈을 미리 당겨서 쓰게 했다.
고비였다!
대구에서의 일을 끝내고 1월에 부산으로 내려왔는데 연습은 하고 있었지만 시기가 늦어 시민회관이나 무궁화관이 대관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자금 역시 계약금 정도밖에는 갖고 있지 못했다. 이러다 정말 연주회를 못하는 것은 아닌지 심히 초조했다. 그 때 교대 앞에 부산진고 동창회 사무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4기 준규랑 같이 찾아 나섰다. 가보니 그곳은 동창회 사무실이 아니라 부산진고 1회 졸업생들의 연락처였다.
실망이었다!
동창회 명패가 걸려있는 국제 안경점으로 들어가니 김재봉 선배님이란 분이 그곳의 사장님이셨는데, 후배라고 말씀드리고 그 동안의 일들을 그냥 신세 한탄조로 길게 늘어놓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선배님의 도움이 우리의 제5회 정기연주회를 성사시켜 주었다. 동래중앙교회 부목사로 시무 하시던 허준 선배님을 소개시켜 주셨는데 그 분이 도와주셔서 무궁화관을 계약할 수 있었고, 연습장소로 동래중앙교회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여기에 힘을 얻어 처음으로 포스터도 제작해서 붙이고 MBC방송국에 PD로 있는 김옥균 선배님의 협조를 얻어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인 ‘별이 빛나는 밤에’ 에 Guest로 출연하여 방송의 힘을 빌어 보다 널리 Jin Harmony를 알리기도 했다.
<Jin Harmony 제5회 정기연주회>, 동기들은 곁에 없었지만 후배들과 더불어 Jin Harmony를 한 단계 올려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었다. 내용 면에서도 처음으로 관중들의 흥미유발을 위해 Popular Stage를 만들어 선 보였는데 그 반응이 기대를 뛰어 넘었었다. 그 무대를 끝내고 지하 대기실에서 Final Stage1)를 준비하는데 후배 하나가 뛰어 내려와 올라와 보라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하고 올라가 보니, 이럴 수가! 관중들이 하나같이 박수소리 맞추어 앵콜을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감격스런 모습이었다. 그 동안의 피로가 한 올 한 올 씻겨져 내려갔다.
그것은 보람이었다!
음악은 시간적 예술이라 찰나에 소멸해 버리고 만다. 무섭도록 열심히 다가서지만 그 끝에는 나를 비웃듯이 빈 공간만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여운은 남아 언제나 살아 숨 쉰다. 정열로 몸을 태워 결국에 허무만이 남아도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닐까?...
학창시절 음악제가 끝나고 나서 혼자 텅 빈 음악실에 가 본 적이 있다. 4층에 자리 잡았던 옛 음악실, 밑에는 아직 구경꾼들이 몰려 웅성거리고 있지만 손 때 묻은 그 곳은 어둠과 적막이 깔려 있었다.
불 꺼진 창가, 피아노에 앉아 음을 때렸다 ♩♩♪♪♩........
5회 정기연주회도 끝이 났다. 관중은 하나 둘 빠져나가고 후배들도 찾아온 사람들과 삼삼오오 밖으로 나갔다. 그 날도 내게 올 수 있는 여분의 꽃다발은 없었다. 누군가 다가왔다.
“형, 우리도 이제 가야죠?”
“그래, 가야지!”
다들 밖으로 보낸 후에 무대 위의 피아노에 앉았다. 객석의 조명은 하나씩 내려지고 무대 위도 점차 어두워져 간다.
「솔 솔 미파솔 라 라 솔 솔 도 미 레도 레.......」
애잔히 퍼져간다.
무섭도록 슬프고, 처절하리만큼 허무하지만 분명 그것은 말로 표현 못할 아름다움이었다.
무대 위의 조명도 꺼졌다.
어둠 속의 그림자도 서서히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1) 'Final Stage'란 매년 개최되는 Jin Harmony 정기연주회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Jin Harmony만의 특색 있는 무대를 말한다. 매년 신입단원이 입단하게 되면 창단초기에 선배들에 의해 불리던 10곡 정도의 노래를 의무적으로 배우게 되는데, 주로 흑인영가와 성가곡인 이 곡들은 선배와 후배를 노래로 하나되게 하는 가교 역할을 해준다. 처음 배울 때는 기합과 매가 따르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익힌 Jin Harmony의 노래는 세월을 넘어 화음을 엮고 있다. 이 중 3~4곡은 매번 연주회의 마지막에 불려지는데 연주회 주무대 인원 외에도 참석한 전 단원이 같이 참여함으로 전체가 하나임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