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이별의 서곡 - 1998년 9월 27일



여기서는 그 날 밤에 있었던 일들을 그냥 기억나는 대로, 손가는 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이미 오래전의 일이지만 스케치해 둔 자료를 토대로 적는 글이니까 내용은 대부분 정확할 것이다.


그 날은 몸이 좋지 않아 밤 9시가 다 되어서 예원으로 갔다.

일상적인 인사.

무엇인가 석연찮은 분위기에서 얼마가 지난 후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정기연주회의 구조적 변화모색을 통한 선배들의 복귀와 그 입지의 재조명 그리고 'Jin Harmony의 현주소와 미래’ 라는 다소 무겁고도 민감한 문제가 장시간 지리하게 논의되었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 못한 관계로 자세한 제안 설명은 듣지 못했지만 단장의 기조발언의 요지는 아래와 같았다.


< 일간 벌어진 재학생들의 집단탈퇴와 관련하여 Jin Harmony의 방향모색이 요청되어진다. 그와 동시에 다가올 제17회 정기연주회부터 변모하여 새 틀을 마련할 때가 되었다. 현재 정기연주회 관행은 재학생의 과도한 출혈을 요구하고 있고, 선배들은 자신들의 현실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래서 지금처럼 재학생들이 인원구성의 과반수이상을 차지하는 연주회의 구성으로 인해 해마다 선배들이 느끼는 상대적 소외감, 현실적인 연습 참여의 어려움, 단원의 연령차가 20년에 수렴하여 연습과정에서 오는 음악적 언어소통의 난점 등을 지금 우리가 처한 음악적 현실로 인식해야 한다. 그에 따라 우선 무대구성을 선배들만으로 구성된 복4중창 규모의 2개 Stage와 재학생만으로 꾸미는 Stage 그리고 Final Stage로 구분하여 추진하는 것이 어떠냐 > 하는 논지였다.


이것은 내가 귀국한 이상 최소한 음악적 분야는 상의를 거쳐야 한다는 중론 하에 선배들 층에서 일단 합의를 본 사안이기는 하나 내게 동의를 구해 온 것이었다. 이 논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설왕설래되어온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미국으로 가려할 때 연주회의 지휘자 부재에 따른 자구책으로 논의된 바 있다. 지금 다시 거론되는 것은 보다 미래지향적인 구조개선의 측면에서 나온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것이고, 그 동안 음악성이 선배들에 비해 떨어지는 후배들과 사투를 벌여온 지휘자의 입장에서 내가 먼저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논의의 방향설정은 아주 긍정적이기도 하거니와 늦은 감은 있지만 선배 층이 먼저 발의한, 보다 자생적이고 주체적인 것이기에 일차적으로 환영할 만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배경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고 그것은 대화중에 하나 둘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기문제와 모험성, 후배들의 의견이 조율되지 못한 것과 미처 생각지 못했을 파장 등을 이유로 해서 나의 입장에서는 선뜻 동의를 표할 수 없었기에 우선 나는 반대의 입장을 견지해 나갔다. 그러자 이야기는 점점 본질에서 벗어나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부딪히는 ‘벽’ - 참 가슴 답답한 노릇이다.

긍정적이던 의견들은 그 본질을 벗어나더니 책임 소재에 대한 분명한 인식 없이 무조건적으로 실험을 해 보자는 강요로 이어졌다.


여기서 나는 반론을 제기했다.

반대를 한 것이 아니라 의견 개진과정에서 감안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들에 대한 제시였다.

예를 들면 우리의 정서상 재학생들은 정기연주회를 거치면서 음악성을 갖추고 전체 속에 일원이 되어 간다. 그런데 무대를 분리하여 선배들과의 연습과 만남을 없애버리면 그들은 재학생 시절에 선배들이 겪어왔던 동화(同化)의 과정이 생략되게 되어 졸업 후에 잔류할 확률이 그만큼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후배들과 가장 많이 접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가장 막내에 이르기까지 모두의 의견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많은 후배들의 공통된 의견 중 하나는, 졸업하고 Jin Harmony에 남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막말로 그동안 쏟아 부은 시간이 아까워서라는 것이다. 재학생 시절, 선배들과의 부대낌과 정기연주회라는 관문을 거치면서 우리만의 정서가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폭적 수정을 가했을 때, 만약 우리의 생명줄인 재학생들의 졸업 후 이탈이 다반사 가 되었을 때 누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또 선배들끼리만 무대를 구성할 때 생기는 각자의 시간적인 부담은 곡의 수준을 낮추고 이미 무대에 올렸던 연주곡을 다시 선택함으로서 해결가능하다는 생각으로 - 노천에서라도 좋으니 우리 현실에 맞는 연주회가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는 상당히 관점에 따라 시작차가 날 수 있는 사안일 것이다.

우선 연주 장소에 관계없이 들어가는 기본적인 비용과 연습에 따른 시간부담과 강도는 유사하다는 것이다. 작은 무대라고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 노래하는 사람의 기본자세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열악한 우리의 자금관계상 입장권 판매수익이 연주회 자금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곡의 수준이 낮고 천편일률적인 레퍼토리로 연주회를 한다면 누가 보러올 것이며 그들 앞에 어찌 고액의 입장권을 내밀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 의견을 낸 이에게 질문을 했다.


“좋은 의견인데, 그렇게 해서 곡의 수준도 낮추고 연습시간도 줄이면 그 줄인 연습시간 만큼은 참여하겠다고 약속할 수 있겠냐?”

“약속은 못합니다!”

“..................................!”


필요악이긴 하지만 그동안 자존심 굽혀가며 동창회 선배들에게 ‘작은 도움 큰 불만’을 받아왔고, 고사리 제살 뜯듯 스스로의 출혈을 감수하며 입장권 강매를 해왔다. 그러지 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눈물을 머금고 참아온 것은 어찌하던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일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연주회를 하고 유지하여야 하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Jin Harmony의 성장과정 이면에 자리한 ‘각고의 노력에 참여하지 않은 이른바 기회주의적 아웃사이더’의 호사가 아닐까 한다.

그동안 Jin Harmony 최대의 쟁점은 ‘생존(生存)’ 이었다.


나의 Jin Harmony에 대한 생각과 후배들의 Jin Harmony에 대한 시각이 다른 연유로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입장의 차이일 것이다. 찌든 생활 속에서 위안과 휴식을 원하는 이들과 꿈을 위해 현실을 희생하는 비현실적 사람과는 분명 괴리가 존재할 것이다.


< 현자(賢者)는 얘기한다.

“꿈이 없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두드리라 열릴 것이요, 구하라 주실 것이다.”

“푯대를 향하여!”

나는 감히 얘기한다.

인간의 의지만큼 강한 것은 없다고. 꺾이지 않는 정열을 갖고 꿈을 향해 간다면 그러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나은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날 수 없기에 날아오르기를 소원했고, ‘달에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살 것이다’라고 막연히 동경하며 달에로의 비상을 꿈꿨다. 당시로는 황당하지만 그런 꿈에로의 도전과 노력, 그리고 꺾이지 않은 의지가 있었기에 그러한 현상들을 과거형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너희들에게 강요하는 바가 없고 희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다만 좋아하는 노래를 꾸준히 부르고 서로에 대한 믿음만 간직한다면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보다 윤택한 미래는 존재할 것이다. 밑져야 손해 볼 것 없지 않느냐! 그냥 이대로 부대끼며 지내다보면 이 미친 인간이 좌충우돌 어느 정도의 형태는 갖추어 놓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더 이상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져다오. 나는 Jin Harmony를 신앙처럼 여기며 사는 사람이 아니더냐! 일점일획 부끄럼 없이 자신할 수 있다. 오가는 불확실한 루머는 이제 종식시키고 믿음을 가져다오! 절대 실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


또 우리의 수준이 특히 인원구성상 고등학교 학예전 수준이란 의견도 있었는데 이는 참으로 슬픈 자기비하의 논리가 아닐까 한다.

검증 된 바 우리는 활동영역과 시기에 있어 한계를 가지지만 최선을 다한 연주회의 수준을 놓고 볼 때 자타가 공인하는 정도에 올라있다.

그리고 선배 층들이 줄어드는 것은 우리 구조 (사회의 동호인 모임이나 계모임처럼 사회적 기반이 갖추어진 후에 결집된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를 근간으로 한 각 기별 소수의 모임으로서 각자 생활의 터전이 흩어져있고 음악에 대한 성장후의 시각이 상이한 연유로 단체의 존속에 가장 핵심을 이루는 것은 무엇보다 정적결집에 있음) 관계상 선배들이 각자의 삶에 충실할 때 아무래도 소원해질 수밖에 없는 듯하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인원의 불균형은 제대로 된 단체로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겪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아픈 자화상이지 누구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지난 연주회들의 사진을 살펴보면 해마다 인원이 제자리걸음 내지는 선배 층이 줄어드는데 이도 떠나는 이들이 나와의 감정대립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 고로 포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책임을 통감하지만 분명한 설명의 요지가 있다.

예외도 있을 수 있겠으나 대부분 나와 대립되었던 부분은 공적인, 다시 말해 Jin Harmony의 사활 내지는 본질에 대한 것으로 세월이 지나 바뀐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최후의 보루로서 지켜낸다는 공적인 대립이었으므로 지금도 그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리고 누군가 문제제기를 한다면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작금의 직설적이지 못하고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경로를 통한 발언과 고민은 의미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시간을 거스를 수만 있다면 시험해 보고 싶다.

그러나 오, 통제라! 누가 책임질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몇몇의 의견이라 치부하고 무시할 수도 있으련만 후배들의 이야기 끝이 나의 폐부를 찔러왔다. 말이란 뱉어버리면 그만일지 모르나 그것을 듣고 마지막의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서는 그냥 흘려버릴 것이 없는 모양이다. 물론 후배들 전체의 의견은 아니었을 것이고 선의로 나온 말이었겠으나 미국에서의 꿈마저 접고 온 나에게 상처를 주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의견은 많으나 책임지겠다는 이가 없고, 목청은 높이나 앞뒤가 맞지 않는 일부를 위한 절름발이 불균형이니 이지매의 감정적 격전장에서 마음의 슬픔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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