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스무살까지는 살고싶어요
(나 가거든 - 제20회 정기연주회 중에서)
2001년은 여러모로 힘들고 바쁘게 보낸 한 해였다.
19회 정기연주회가 끝나고 예정된 이탈리아 순회연주회를 본격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시점인데, 사정은 그리 녹녹치 못했었다. 제일 당면한 과제는 2년간 지내던 연습실 ‘예원’이 기한 만료되었고, 까탈스러운 건물주인 때문에 다시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다.
마침 눈에 띈 괜찮은 곳이 있었다.
큰 길 버스정류장 옆 4층 건물의 3층이었는데, 위치와 시설은 무척 좋았지만 문제는 이전과 비교해서 3배에 달하는 전세금과 월세 등 유지비였다.
지난 10년간 정기연주회 직후에 연례행사로 매년 부곡하와이에서 MT를 가졌다. 연주회 준비에서 누적된 피로를 푸는 의미에 더해서 연주회 결산보고와 임원 선출을 하는 정기총회의 성격도 겸해서 진행되어온 행사였다.
그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같은 장소로 MT를 떠났고, 연주회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더불어 새롭게 얼굴을 보인 선배 11명도 함께했다. 선배들이 주축이 된 회의시간에 예원 이사문제와 이탈리아 순회연주회 건이 토의되었다.
우선 이탈리아 순회연주회는 번외의 행사로 규정하여 안건에서 제외되었고, 이사문제는 전세금을 내가 마련하면 월세 등 유지비는 선배들이 도움을 주는 것으로 정해졌다. 미리 보아둔 곳이 마침 공간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기에 내 거처를 예원과 합치기로 하고 전세금을 마련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조금은 무리한 확장이전이었지만, 한 단계 도약을 바라며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미리 보아둔 곳으로 3월 초에 이사를 했다.
지하세계에만 존재하던 ‘예원’이 드디어 지상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새롭게 단장한 예원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21기를 선발하는 것이었다.
대대적 홍보에도 불구하고 겨우 7명만이 오디션을 보러왔는데, 그 수준 또한 그리 기대할만한 것은 아니었다. 예년에 비해 워낙 적은 인원이었기에 일단 시간을 더 두고 지켜보기로 했는데, 오디션 1주일 후 전원이 포기하겠다는 간접적 연락만 들을 수 있었다.
21기는 ‘1주일 천하’로 최후의 기수, 최소인원, 최단기 활동기간이란 기록을 세우고 만 것이었다.
몇 번 언급하기도 했지만, 갈수록 달라지는 후배들의 가치관은 한계를 분명이 한 것이다. 21기의 증발은 더 이상 Jin Harmony가 전통의 형태와 방식으로는 유지될 수 없음을 알게 한 것이다.
이후, Jin Harmony는 이탈리아 순회연주회 체제로 전화되어 비상국면에 돌입했다. 안타깝게도 기존의 단원 중 이탈리아 행에 부정적이거나 동참하기를 포기한 단원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에 거리를 두었고, 같이 준비를 하는 단원들은 적은 인원과 관심부족에 힘든 과정을 겪어야 했던 시간들이었다. 이탈리아 순회연주회와 관련된 일들은 앞으로 따로 정리할 예정이니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 이탈리아 순회연주회 관련 중략 - 혼성합창단 'Music Sketches' 참조 ---------
고마운 도움의 협조도 있었다.
당시 단장이었던 닥터 L는 이사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었고, 4기 K는 피아노 구입에 거금을 찬조하기도 했으며, 이탈리아 순회연주회를 떠나기 몇 일전에 3명의 선배가 공동으로 출정식을 겸한 회식을 제공하는 관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보고도 없이 이탈리아로 떠났다는 것이 빌미가 되어 우호적이었던 닥터 L이 멀어지게 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나는 출국 직전까지 불안했던 상황을 헤쳐나가느라 워낙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선배이기에 좀 무심했다고 인정한다면, 중간기수들이 도움을 준 몇 안 되는 선배들에게 신경을 못 쓴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면 없을 것이다.
그런 한편, 선배들이 예원 유지를 도와주기로 했던 결정은 그날이후 오늘까지 한 차례도 지켜지지 않았다. 선배들의 말만 믿고 예원을 이사한 것은 아니지만 한 차례도 도와주지 않은 것은 많은 문제점의 이유가 된 것 또한 사실인 것 같다.
예외적으로 결정의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도와주고 있는 6기 L과 K는 말만 앞세우는 이들과 비교되어 나를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재미있는(?) 사건이 하나있었다.
♡ 남자를 사랑한 남자! ♡
본인이 먼저 떠벌리지 않았다면 평생 비밀로 간직했을 문제지만, 제법 시간이 지났고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일이라 가볍게 이야기 하겠다.
문제의 주인공은 한동안 객원으로 참여했던 K였다.
어느 날 홈페이지의 채팅방에서 심각한 고민을 상담해왔는데, 간접화법으로 말하기에 처음엔 조건이 차이나는 여자로 알았다. 그런데 점점 이상해지는 말에 농담처럼 던진 질문이,
“그럼 남자냐?” 였다.
“예! ........... O군입니다”
처음 겪어보는 황당한 경험에 당황했지만, 둘만의 비밀로 하기로 하고 절대 드러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내 입장에서 개인의 사생활을 문제 삼을 수는 없었다. 말할 수 없고 금지된 사랑을 한다는 이유로 자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사랑이 죄가 될 수는 없겠지만, 그 후로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문제의 O군을 보호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최대한의 신경을 써야했다. 솔직히 팔은 안으로 굽기도 했지만 동성애(同姓愛)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K가 마음에 담고 사모했던 O군은 내가 알고 있던 O군이 아니었다. 대략적인 조건과 이니셜로만 알고 있었는데 정작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은 같은 이니셜의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잘못 알았던 O군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벌인 해프닝 때문에 모르는 다수의 사람에게서 숱한 오해도 받아야 했는데 정작 주인공은 딴 사람임을 알고 허탈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나만의 비밀이 아니었다. K의 입을 통해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주인공 O도 사실을 알게 되었고, O군을 향한 K의 사랑은 애정을 넘어 집착으로 치닫고 있었다. 당시 O의 여자친구에게 섬뜩한 협박문자도 수시로 보내고, O군의 사진을 돈 주고라도 구입하겠다고 여럿에게 부탁도 하고 다닌 모양이었다. 내게는 공연 중에 옆자리에 서게 해 달라는 부탁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어느 전체 회식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사랑을 천명하며 대성통곡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목불인견(目不忍見) - 정말 눈뜨고 볼 수 없는 아픈 사랑의 파국이었다.
이 사건으로 객원단원이었던 K는 제명되었고, 그 후로 그의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었다.
그 해 가을은 몇 차례 연주의 기회가 있었다.
10월 18일에는 부산진구청 주최로 열린 ‘서면 예술축제’에 초청받아 거리공연을 했다. 이탈리아 순회연주회를 다녀오고 나서 객원들은 떠났고, 자체적으로도 인원이 많이 부족한 시기였지만 이미 봄에 약속된 공연이었기에 어렵게 인원을 구성해서 무대에 올랐다.
예전에 한 차례 인연을 맺었던 부산진구청이었고, 새롭게 큰 행사를 기획한다고 여러 차례 찾아와서 부탁을 하는데 계속 거절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었다. 대규모 팝스밴드의 반주에 경쾌한 대중적인 곡들을 남성합창으로 구성했는데 대중의 좋은 반응이 있었던 무대였다.
그리고 11월 4일에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있었던 예타래 주최의 ‘숨쉬는 땅’이란 공연에 합창파트로 참여하였다. 이 공연은 이탈리아 순회연주회에 예타래가 사물놀이로 동행하는 조건으로 내건 참여였다.
절대적으로 인원이 부족한 시기였지만 약속은 약속이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인원을 동원해서 약속을 지켰고 의무를 다했다.
함께 하기로 했던 다른 합창단의 무성의에 상심해있던 그분들이 우리 연습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Midi 작업까지 해서 최대한 연습효율을 높였던 우리 모습에 그분들은 고마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한편, 1년 전 성대하게 치룬 것과는 비교되는 것이지만, 11월 24일에 창단 20주년 기념행사가 기장군 청소년수련관에서 1박 2일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인원도 많이 줄었고, 규모도 초라했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래도 희망이었던 행사였던 것 같다. 철모르던 열여덟 시절에 만들어 어느덧 스무 돌을 맞는 뜻 깊은 날이었지만, 성년이 되는 것을 기념하는 것보다는 아직도 살아있음을 기뻐해야하는 의미로 여겨지던 것은 왜였을까?
‘스무 살까지는 살고 싶어요!’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때 머릿속에 맴돌던 말이었다.
예전에 골수암으로 죽어가던 18살 소녀의 얘기를 다룬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던 영화가 있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제목에서 충분히 어떤 스토리인지가 파악되는데 당시의 우리 처지와 너무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스무 살까지 만이라도 살고 싶다’는 소녀의 애절한 심정이 ‘20회 정기연주회까지는 어떻게 해서라도 버텨보겠다’는 내 처지와 처절히도 닮은 것이다.
기념비적인 연주회를 구상하면서 준비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급선무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었다. 그나마 20회라는 의미가 있기에 어렵지만 최소한의 인원이라도 동참할 수가 있게 되었다. 내용면에서는 아쉬움이 느끼고 있었던 ‘러시아 민요’를 주제로 삼고 10회 정기연주회 이후의 연주곡들 중에서 대표곡을 골라 프로그램을 완성했다.
다른 측면에서는 20회의 의미를 더욱 빛내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피아니스트 2명을 초대했다. 바로 Andrea Bambace교수와 Sabrina Kang이었다.
우리 연주회에 반주와 ‘피아노 듀오’로 특별출연하고 반주의 일부분을 맡아주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탈리아 순회연주회를 성사시켜준 보답으로 부산의 한 음악기획사와 연계하여 우리 연주회 이틀 뒤에 두 사람의 연주회를 문화회관 중강당에서 마련하여 선물해준 것이었다.
해가 바뀌고 2월 24일, 그 날이 왔다.
Jin Harmony 제20회 정기연주회가 문화회관 대강당에서 막을 올린 것이다.
탑을 허물기는 쉬워도 쌓아가는 것은 얼마나 힘든 작업인가.
어느덧 살아온 날의 절반을 훌쩍 넘긴 세월이며, 한 해 한 해 끊임없이 연주회의 돌탑을 쌓아온 것이 20년이다. 누구도 쌓으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누구는 높아가는 탑의 무게를 못 견디고 함께 지탱하기를 포기했었지만 또 하나의 돌을 탑 위에 올리는 날이었다.
그 시절 가장 소박한 최소한의 바램 - ‘스무 살까지는 살고 싶어요!’란 소망이 현실이 된 날인 것이다.
재해석과 재편곡을 거친 곡들이 하나씩 무대 위에서 관중을 향해 퍼져나갔다. 단원들의 모습이 한 명씩 눈에 가득 들어왔다 다른 이에게로 옮아갔다. 이런 저런 사연을 가졌을 단원들의 모습이 마음에 아렸다.
금관5중주와 신디사이저의 반주가,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피아니스트의 화려한 연주가 우리들의 연주회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으리라!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는 다시 불러보지 못한 ‘Final Stage'가 아쉬운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 ’Final Stage'가 정말이지 마지막이 아니었기를 이 순간 너무도 간절히 바래본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앵콜이 불려졌다.
준비한 곡은 조수미가 불렀던 ‘나 가거든’이었다. 그 가사의 의미가 너무도 마음에 와 닿아 선택했던 곡이었는데, 눈물이 가사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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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달빛 아래 내 그림자 하나 생기거든
그땐 말해볼까요 이 마음 들어나 주라고
문득 새벽을 알리는 그 바람 하나가 지나거든
그저 한숨쉬듯 물어볼까요, 나는 왜 살고 있는지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나 슬픔까지도 사랑했다 말해주길
흩어진 노을처럼 내 아픈 기억도 바래지면
그땐 웃어질까요 이 마음, 그리운 옛일로
저기 홀로선 별 하나 나의 외로움을 아는건지
차마 날 두고는 떠나지못해 밤새 그 자리에만
나 슬퍼도 살아야 하네
나 슬퍼서 살아야 하네
이 삶이 다 하고 나야 알텐데
내가 이 세상을 다녀간 그 이유
나 가고 기억하는 이
내 슬픔까지도 사랑하게.
부디 먼 훗날
나 가고 슬퍼하는 이
나 슬픔속에도 행복했다 믿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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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음미해 보았는가?
지구가 한 번 더 공전한 후에 21회 정기연주회가 열렸지만 그것은 2003년 이탈리아 순회연주회를 앞 둔 시점에서 Pre-Italy Concert 형식으로 열린 것이기에 엄밀히 말하면 전통의 형식을 갖춘 마지막 연주회는 20회 정기연주회였다.
다시 겨울이 왔을 때, 다시 전통을 이어받은 제대로 된 정기연주회가 되살아나기를 지금 이 순간 간절히, 너무도 간절히 기원한다.
Jin Harmony 제22회 정기연주회
지금 이것이 나의 가장 큰 화두(話頭)이다!
뜻있는 그대에게도, 참여여부를 떠나 추억을 공유한 그대에게도 그러했으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