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향하여
프로와 아마추어는 여러 가지로 구분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단계를 조금 낮추어서 무대와 유료공연이란 척도로 구분을 짓는다면, Jin Harmony는 당연히 프로에 속한다. 아마추어란 즐기는 차원에서 책임감이 보다 덜 따른다면, 프로는 관객을 의식해야 하고 그 뒤의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대략 문화회관에서 있었던 10회 정기연주회부터 우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프로’ 라는 인식을 강조해 왔고 익혀 왔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직업의 개념을 포함한 프로로 향하기에는 그 거리가 너무도 요원하고 아직 전체의 합의점도 도출해 내지 못한 상태다. 우리의 음악과 모임을 순수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으로만 돌린다거나, 단순히 취미 정도로 생각하여 안주하기에는 그 동안 투자했던 땀과 노력과 시간이 안타깝고, 그렇다고 전원이 직업적으로 뛰어 든다 거나 노래에만 매달린다는 것은 더욱 더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에서 새롭게 착안한 것이 ‘세미프로’ 체제인 것이다. 모두가 음악을 사랑하고 선․후배의 결합을 원하는지라(?) 최소한의 전문인력이 일을 추진해 나가고 향후의 음악 내․외적 요소를 전담해 나가면 틀은 잡혀 나갈 것이다. 규모가 커지고 실력이 향상되어 가다보면 자연발생적인 요청도 뒤따를 것으로 보아진다. 대부분의 단원들은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유수한 합창단의 경우에서 보듯이 주 1~2회의 연습시간만 할애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성과는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년 1회의 정기연주회와 여름 가족음악회 만으로도 힘에 겨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달에 가기 전에는 그것이 단순한 염원이었듯이 우리가 이 만큼의 성장을 이룬 것도 그 이전에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지금의 어려운 여건에서도 대부분의 단원이 참여하는 연주회를 서로에 대한 신뢰로써 만들어내는데, 시간의 흐름을 감안하여 더욱 인적 자원이 풍부해지면 년 4회의 연주 계획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기존의 정기연주회는 지금까지의 형태를 고수하고, 이외의 연주회와 음악활동은 무대참여 인원을 40명으로 제한한다면 무난할 것이라고 본다. 13회 연주회 때에야 주무대 인원이 겨우 40명을 넘었지만, 세월이 흐르다 보면 40명에 대한 생각은 바뀔 것으로 본다. 지금은 인원수 채우기에 급급하지만 서서히 진정 음악과 더불어 살고 싶고, 노래하기를 우선으로 하는 사람들로 바뀌어 나갈 것이다. 연주회 때가 되면 출연을 위한 오디션을 거쳐야 할 것이고, 강제적 인원 동원은 자취를 감출 것이며,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서 세계 제일을 향한 도전에 나설 수 있으리라.
지금 세계적인 합창단들의 초창기를 살펴보면, 아마추어의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한 팀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 반면에 여건을 만들어 놓고, 사람만 규합한 단체의 생명력은 그리 길지 못했다. 노래는 사람이 한다는 반증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사람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 가야 할 것은, 세월이 제아무리 흐르고 단원이 수 없이 많아져도 지금 시행하는 정기연주회의 골격은 유지되어야 하며, 그 속에서 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더 큰 음악적 꿈을 말하기 이전에 우리의 시작은 중창단이었고, 합창단이었음을 주지하면서 다른 무엇보다 합창음악에 있어서만큼은 두각을 나타내어야 한다.
다양한 연령층과 음악 속에 하나 되는 일체감, 무대와 청중간의 격의 없는 공감, 빈번한 연주활동, 그리고 지속적으로 연결되는 화려하면서 따뜻한 레퍼토리로 승부수를 던진다!
이런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하면 더욱 성장하고 활동무대를 넓히는 방안이 모색될 것인데, 그 최초의 시도가 서울로의 진출일 것이다. 어차피 우리의 출생과 성장이 부산이기에 당연히 근거지는 부산이 되겠지만, 국내의 문화적 인식도 그러하거니와 보다 폭넓은 연주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인정을 받기 위해서도 수도 서울로 발을 넓혀야 한다.
지금 논의되는 내용들은 그 골격이 1988년에 세워진 것으로 어떤 부분은 이미 상당 부분 근접해 있는 것도 있다. 이하의 내용이 그런 부분이 아닐까한다.
성격이 세미프로로 바뀌고 지속적인 연주활동의 토대와 시행이 이루어지면, 아마도 폭넓은 지지층과 관객의 확보가 요청될 것이다. 자연히 홍보활동이 필요하게 될 것인데, 이미 방송출연은 여러 해에 걸쳐 시행해 왔으니 앞으로도 무난하리라 여겨지고, 자금사정이 허락하고 실력이 뒷받침된다면 음반 출반이 필요해 질 것이다. 그 동안 몇 차례 녹음을 시도하다가 14회 연주회가 끝나고 그 동안의 연주 실황들을 CD로 제작해 놓았으니 한 가지만 해결되면 이도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노래에 귀를 기울여 주느냐,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뀜에 따라서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이 얼마나 우리의 음악적 변화와 궤를 같이 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결국, 홍보와 자금 그리고 음악의 완성도는 우리를 평가받는 시금석이며, 고비가 될 것이다.
어떤 단체이거나 제대로 활동을 하는 곳에는 그 단체를 대변하고 게시판 기능을 하는 會誌가 있게 마련이다. 1987년에 어렵게 창간한 <Jin Harmony 會誌> 가 휴간과 복간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단원 모두가 나름으로는 바쁘고 치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만큼, 한 번 회지를 만들려면 진통도 따르지만 최소한 ‘소식지’ 의 개념으로라도 지속적으로 간행되어야 한다. 훗날 史料로 활용될 수 있을뿐더러, 우리의 얼굴로서 서로의 근황을 알리고 외부로는 우리를 대변할 수 있게 하여야겠다.
아울러 현재도 Jin Harmony를 좋아하고 모임에, 연주회에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우리들의 정신적․물질적 후원자들이 있다. 그 분들과도 친분을 돈독히 해야 함은 물론이고 머지않은 장래에 <Jin Harmony 후원회> 가 설립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심과 계획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회지는 그 분들과의 유대관계를 맺어 주는 촉매의 역할도 해낼 것이다. 나아가서 여건이 조성되고 난 뒤, 이 회지는 ‘음악종합지’로 발전하여 그 위상을 떨치게 될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