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선율이 흐르는 밤에
무려 8㎏이나 줄어든 몸무게를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강철도 녹인다는 시절의 위장인데 얼마나 몰두하고 집착했으면 3개월 만에 그 만큼이나 체중이 줄어든단 말인가! 또 한 가지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모교의 명예, 노래가 좋아서’ 라는 등의 이유는 대외적이고 공식적이며 이성적인 것이었다면 나 개인의 내면에는 감성적이고 비밀스런 또 하나의 이유가, 의미가 추가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제는 추억의 저 너머에 자리 잡은 ‘사랑’ 이라는 이름의 풋내 나는 가슴앓이였다.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에서 단란한 한 가정의 주부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겠지만, 그 시절의 그 연상의 여인은 나의 전부였다. 4년 4개월의 홍역, 고교생과 여대생의 다소 신파적인 로맨스는 어리고 여렸던 소년을 성숙하게 이끌었고, 비록 그 값비싼 대가가 인생의 굴곡을 깊게 만들었다 하여도 후회와 미련을 남기지는 않았다. 그 시절 그 추억이 또 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으리라는 노래가사를 오늘에 되 뇌이며 그 때를 회상한다.
혹자는 철 이른 불꽃놀이라고 일축해 버릴 수 도 있겠으나 당시의 하늘은 온통 핑크 빛이었고 마음은 늘상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그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힘들었고, 같이 거닐던 거리마다 추억이 아로새겨졌으며, 헤어져 나누는 편지들에 그리움이 쌓여 갔다. 때로는 시인이 되었고 때로는 짓궂게 어리광도 부리면서 점차 그녀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했던가! 무엇이 아까울 것인가! 진정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안타까이 주위를 감싸고도는 것은 ‘가난’ 이라는 참으로 불편한 굴레였다. 가진 것은 사랑한다는 그 소중한 마음과 무엇이든 해주고 싶다는 열정과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개인의 과거사를 토로하는 것은 ‘Jin Harmony'의 초창기에 얽힌 지극히 인간적이고 너무나 솔직한 고백을 선행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Jin Harmony' 창단 연주회는 가장 개인적인 면에서 그녀에게 헌정한 내 사랑의 선물이었고 가슴으로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그 애틋한 마음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동원하게 해준 원동력이었던 것 같으다. 지금 그 연주회를 ‘음악과 사랑에 대한 애정’ 바로 그것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도 그 만큼 진지했고 순수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와의 기억은 영롱한 추억이 되어 가끔씩 채색(彩色)되어 나타나지만 그 순수했던 사랑과 열정은 ‘Jin Harmony'가 유지되고 내가 한 줌의 흙이 될 때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Jin Harmony' 창단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982년 11월 20일.
그 날은 <‘Jin Harmony' 창단연주회> 가 열리던 의미 있는 날이었다. 후배들의 탈퇴를 종용하고 연습을 할라치면 음악실 문을 잠그고 가 버리시던 그런 음악 선생님의 벽을 넘어 우리들의 노래를 부르는 날이었다. 그런 선생님의 언행은 대학진학을 위한 스승의 배려일 수도 있었겠지만 나이가 들고 세상물정을 조금은 안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시각에서도 그리 좋은 의도로는 보이지 않으니 이는 나의 옹졸함 때문일까?
아무튼 우리는 모교의 실추된 음악적 명예를 위해 노래했고, 우정을 위해 노래했고, 진정 마음을 다해 노래했다.
그 날 밤은 써 붙인 제목처럼 정말 ‘선율이 흐르는 밤’ 이었다. 하얀 와이셔츠와 교복바지로 복장을 통일하고 한 순서 한 순서 진행시켜 나갔다. 난생 처음 남들 앞에서 지휘란 걸 해보게 되었고 모자라는 소리지만 독창도 한 곡 했으며 충엽이랑 성환이가 2중창 순서도 꾸몄다. 또 음악을 전공하려고 공부하는 고등학생들로 실내악 반주도 구성했는데, 그 현악의 화음과 전자오르간 또 피아노의 앙상블이 우리들의 노래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포근하게 느껴져 왔다.
모든 순서가 무사히 끝이 나고 우정어린 악수들을 나누었다. 축하를 주고받는 사람들 - 꽃다발 하나 없이 횅하니 서 있는데 1기 용광이가 다가와 자기가 받은 화환을 목에 걸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포옹했다.
음악이란 것이 한 순간의 절정을 위해 그 많은 시간을 노력해야하는 기본적인 속성을 갖고 있건만 그 때 나는 모든 것이 끝나고 난 뒤 밀려오는 허탈감은 미처 몰랐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허무와 친해지는 법을 배웠다.
탈진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때에는 미처 알아챌 수 없었지만 오늘과 또 내일에도 이어질 시찌프스의 허무와 도전은 그 순간 장엄한 서곡을 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피곤이 엄습해 오는 뒤에 작게나마 희미하지만 가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노래를 듣지 못했고, 우리들의 몸짓이 단지 허공에 외친 공허한 소리였다 할지라도 그 과정과 결과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한 우리 땀과 노력의 결정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