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눈물바다에서
1기들은 고3이니 이제 활동을 중단하고 입시준비에 들어갔고, 우리 손때 묻은 음악실을 2․3기들이 물려받았다. 그러나 진통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후배들이 연습하는데 대한 음악선생님의 태도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고, 후배들은 그 비유 맞추느라 애꿎은 속만 끓여야 했다.
틈틈이 음악실을 찾았다. 도시락도 같이 먹고 이전 얘기도 해 주면서 맥을 이어 갔다. 이즈음 문성환이가 서울로 이사를 갔다. 매도 제일 많이 맞고 노래도 잘했는데 떠나보내려니 아쉬움이 컸었다.
누구에게나 고3 시절은 힘들고 중요한 시기인 듯 나 역시 혼자만의 갈등이 심했었다. 음악을 계속할 수 없는 주위여건과 어떻게 해서라도 음악을 하고 싶은 속마음은 처절히 대립했었지만 결국은 나약한 모습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자신이 싫었다. 학력고사 원서가 접수되던 9월말, 이과공부를 하던 나는 문과로의 전과(轉科)를 원했다. 개교 이래 나 같은 녀석은 처음 본다는 담임의 회유와 설득에도 불구하고 이과를 포기했었다. 적성은 차치하고라도 그 동안 음악에 매달려 기본기도 부족할뿐더러 음악을 전공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인간을 다루는 학문을 하고 싶었다. 반은 옮기지 않았기에 과학시간이면 도서실로 가서 혼자 문과과목을 공부했다. 징계 받았다는 오해도 받으면서.......
남아있는 학창시절을 그렇게 보내면서, 한 가닥 음악에의 꿈을 버리지 못한 채 그야말로 홀로서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랭한 바람이 불어오는 12월, 다시 연주회의 환상이 되살아났다. 고교시절, 겨울이면 끼고 다닌 마스크에 베인 체취는 그 해 따라 유달리 강했었다. 1년간을 숨죽이며 간직해온 우리들의 노래, 정말이지 부르고 싶었다. 그러나 음악선생님의 벽은 아직도 높아만 보였고 연주장소 또한 구할 길이 막막했다. 1기들이야 졸업하면 그만일지 모르나 남아있는 후배들에게 미칠 악영향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노래는 부르고 싶은데 막무가내로 밀어붙일 수도 없고 실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이제는 맥없이 노래만 부를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으로 맥을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수소문 끝에 예정된 날짜 이틀 전에야 겨우 2기 용대가 다니던 교회를 연주회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조치가 되었다. 그렇게 장소는 억지 춘향으로 해결되었지만, 시간적으로 초대장이나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없었고 여러 사람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단 하루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는데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했다. 1983년 12월 22일에 있었던 <Jin Harmony 제2회 정기연주회> 는 그 드러난 모습이 노래 부르는 합창단원이 27명, 들어주셨던 청중은 36명이었다.
가슴이 미어져 왔다. 슬픔도 서글픔도 아닌 묘한 감정이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3,600명의 관중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노래를 불렀었다. 모든 순서가 끝이 나고 대기실이었던 교육관으로 가보니 그 교회 목사님께서 고생했다고 따뜻한 빵과 우유를 준비해 두셨다. 그 상황에서 음식이 목으로 넘어갈 리가 있었겠는가!
이제 1기는 졸업하고 후배는 남는다.
후배들에게 던졌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 눈가에 촉촉이 젖어 드는 엑기스를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제는 헤어져야 한다.
2기와 3기가 두 줄로 늘어서고, 동기들이 차례차례 악수를 하며 훗날을 기약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한 녀석의 손을 잡았다.
“수고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우리 잘해 봐야지!.......”
“형!.......”
다음 순간 와락 안겨오는 것이었다.
“자식! 바보처럼 울긴”
하지만 어느 사이 내 눈가도 젖어들고 있었다. 회한(悔恨)이 덩어리 채 마구 쏟아져 내렸다. 나만이 아니었다.
어느 사이 모두가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헤어짐이 슬퍼 울었고, 현실이 비참해서 울었고, 가슴이 아파 또 울었다.
반주한 신의정이도 노래해준 김은정이도 더불어 눈물을 보였다.
“형! 약속 지켜야해!”
“그래 임마! 우리는 무엇인가 멋지게 만들어 낼게다!”
그것은 차라리 절규였다.
눈물은 강을 이루고 바다로 흘렀다. 그러기를 무려 1시간 하고도 30분. 눈물은 말라가고 이별의 시간이 우리 앞에 다가섰다. 그 눈물바다에서 우리는 서로를 느꼈고 희미하나마 전진을 외쳤다. 지금 비록 그 때의 기억은 희미해도 만지는 눈가에 진한 촉감은 남았을 것이다.
그 후로도 꽤나 오랜 시간, Jin Harmony에 속한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씩은 남자답지 못하게 눈물을 보였었다. 그 눈물로써 토로하던 젊은 날, 서로간의 울분과 다짐들은 부끄럽고 지우고 싶은 과거가 아니라, 남들은 가질 수 없는 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만의 값진 자산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