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한 겨울밤의 꿈
8회 연주회가 끝나고 일광 바닷가로 처음 겨울 MT를 떠났었다. 또 하나의 큰 매듭을 짓고 복학을 했다.
다시 맞는 대학생활.
무엇인가 세대 차에 의한 어색한 분위기에 얼마간 혼란스럽다가, 그 분위기에 적응할 즈음 여름은 코앞에 다가왔고 심각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나와 Jin Harmony 그리고 장래에 대한 함수관계, 즉 진로문제였다. 풀기 어렵고 선뜻 결정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거듭되는 고민과 현실은 나를 점점 타협적으로 만들어 갔다.
그 즈음 차라리 만나지 않았어야 할 어느 선배와의 해후가 있었고 그 만남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어쩌면 예정된 운명의 길로 나를 밀어 넣게 된다. 그 후유증에서 한 동안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새롭다.
아무튼 배신의 기운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지구는 어느덧 또 한 차례의 공전을 거듭하여 우리들의 계절, 겨울을 선물하였다.
공부를 한답시고 9회 연주회의 전권을 4기 성문 이와 5기 주영이 등에게 위임하고 대구에서 머무르다 91년이 되고 1월 중순 즈음에 연주회 과정을 점검해 주기 위해 잠시 부산에 내려왔다.
그런데 연습하는 장소(거성교회)에 가보니 몇 명이 모여 노래는 하고 있는데 연습을 제외한 어느 한 부분의 준비도 전무한 상태였다.
자금도 없었고 대관도 안 되었고 반주자조차 선임이 안 되어 있었다.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달리 믿을 만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닐텐데 어찌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하게 있을 수 있었는지 답답할 따름이었다.
돌파구를 찾으려고 선배 몇 명이 모여 회의를 하다 보니 연습장소는 고은유치원으로 정해졌고 이번에도 행정적인 일은 지지리도 못난 내가 또 맡을 수밖에 없었다.
부산에 기거할 곳이 마땅하지 않아 부산과 대구를 거의 출‧퇴근 하다시피 하여 연주회를 진행시켜 나갔는데 얼마 후에 당시 동창회장님의 도움으로 그분이 경영하시는 광안리 Sea-Side HOTEL에 비록 직원숙소였지만 잠잘만한 방 하나를 얻어 장기 투숙하게 되었다.
서서히 연주회의 모양새를 갖추어 나갔지만 워낙 시간이 급박해서 많은 아쉬움도 남겼다.
경성대 콘서트홀을 대관 했고, 9회의 지휘를 맡았던 주영이가 의욕적으로 시도한 미사곡 무대와 그 파이프오르간 음향의 반주를 위한 신디사이저의 사용, 처음으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투자한 VTR촬영, 인쇄물에도 처음으로 거금을 투입하여 5도 컬러로 위상을 높인 티켓과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등 의욕에 넘치는 기획을 했었지만 짧은 준비기간, 일 할 인원의 부족, 세분화되지 못한 분담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시행착오를 했었다.
그러나 예의 눈물과 추억의 노래를 가슴에 담아내기에 넉넉한 또 다른 일면도 지녔던 연주회였다.
연주회 다음날은 그 옛날 1․2기들이 동양호텔 뷔페를 갔던 이후 처음으로 남천동의 ‘수강제’ 라는 한식뷔페에서 피로연을 가졌었다. 먹성 좋게 먹어치우던 아그들의 모습이 찌푸린 주인 아낙네의 얼굴과 함께 새삼스레 떠오른다.
앞으로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여러 선배들의 말들이 아우들에게는 어떻게 들렸을까!
서로의 수고를 위로하는 따사로운 언어들, 군에 입대해야 하는 주영이의 희비 엇갈린 표정, 피로연에는 처음 참석한다던 3기 상욱이의 애늙은이 같던 모습 그리고 끝까지 뒷자리를 묵묵히 지킨 1기 충엽이와 진근이의 선배로서의 고달픈 시선.....
그날도 요상하게 질펀히 비는 내리고 또 다른 공간 속으로의 헤어짐을 앞둔 우리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진정 한 겨울밤의 꿈이런가!
그리고 또 세월은 쌓여간다.......